우리 할머니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11/27 [08:32]
우리 할머니
내가 생각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5살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우리 집을 다녀가시는 날 저녁엔 언제나 문자가 들어오는데요
'슬기야.. 내일은 신발장에 있는 하얀 운동화를 신고 가렴
아침에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 하얀 운동화를 신으려 할 때 발안에 밟히는 게 있어 들여다봤더니
"만 원짜리 한 장"
엄마에게 들킬세라 꼬깃꼬깃 열 번은 더 접어놓은 만 원짜리를 한참이나 걸려 펴보고 있는 제 눈에
만원보다 더 큰 눈물이 매달려 있었답니다
눈물이 먼저 걸어간 골목길을 돌아 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행복의 친구인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는데요
"할머니.. 제가 이다음에 커서 돈 많이 드릴 때까지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라고 문자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슬기야! 네 엄마 편에 쌀을 보냈는데 쌀 안에 손을 붕어 보렴"
"슬기야 네 엄마가 반찬 그릇 빈 거 가지고 간 것중에 노란 뚜껑이 달린 걸 열어보렴.'
이렇게 사랑이라는 긴 실을 매단 행복이라는 바늘로 제게 큰 기쁨을 비춰주셨던 우리 할머니
"이 할미는 다음에 태어나면 포도가 되고 싶구나"
"왜 포도야?"
"우리 슬기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가 되어 입속에 머무르고 싶었어.'
"할머니는 내가 그렇게 좋아 엄마보다 더?"
'그럼 우리 슬기가 이 핼미 눈엔 하늘보다 더 예쁜걸.
하루에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계셨기에 내 곁에서 늘 함께 해주실 거라 믿고 싶었던 날들을 뒤로하고
그만 하늘에 별이 되어 떠나간 날 엄마랑 할머니 집에 들러 유품을 정리하다
저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우리 슬기가 좋아하는거... 우리 슬기가 싫어하는 거를 적어놓은 일기장을 따라 하루하루
손녀딸과의 소소한 일상을 가슴에 담아두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셨던 할머니
우리 예쁜 슬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햇살을 가리는 손바닥이 되고 싶다는 말.
우리 예쁜 슬기랑 늘 함께 할 수 있는 얼굴에 있는 작은 점이 되고 싶다는 말..
나의 작은 미소 하나에 행복해하며.
나의 작은 눈물에 나보다더 가슴 아파하셨던 당신은 영원히 제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얼마전 선물한 하얀 운동화를 폐지를 줍는 할머님께 전해주며
"우리 예쁜 손녀가 날 신어라고 준 건데 한 치수가 커서 신을 수가 없지 뭐유"
라며 하얀 거짓말로 따뜻해진 마음에 폐지 할머니가 고맙다며 뒤뜰에서 키운 고구마를 자루에 한가득 담아 주셨다는 말로
행복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바람에도 풀잎에도 묻어 있는 햇빛 방울들을 세워보며 집으로 온 제게
엄마는 그 고구마를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가져다 드렸다며 흐못해하고 계셨고
다음날 유치원 문 앞에서 할머니 두분이 우리 유치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요
'늙은 우리보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잘 먹어야지"
라며 그 고구마 보따리를 이고서 유치원에 가져다 놓고 있었고
"원장님.. 이 땅에 주인이 될 우리 보배들이 무럭무럭 자라게 맛있게 만들어주구려'
란 말을 끝으로
아침 햇살이 그려준 행복을 밟고 걸어 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저는 할머니를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주고 또 주면서도 더 주지 못해 늘 애태우며 나의 하루를 걱정해주셨던 사람
그이름은
할머니였다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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