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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성하신당

울릉군 서면 태하길 154

공운식 | 기사입력 2024/09/26 [09:27]

울릉도 성하신당

울릉군 서면 태하길 154

공운식 | 입력 : 2024/09/26 [09:27]

 


1417년(태종 17)에 안무사(按撫使)였던 김인우(金麟雨)는 울릉도 거주민의 쇄환(刷還)을 위하여

병선 두 척을 이끌고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도착하였다.
묵을 곳을 정하고 섬 전체의 순찰을 마친 후, 내일이면 출항하여 귀환할 작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고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해신(海神)이 꿈에 나타나서 일행 중 남녀 2명[동남동녀]을 이 섬에 남겨 두고 가라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이상하게 생각은 했으나 그 꿈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출항을 결심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예기치 않던 풍파(風波)가 돌발하여

도저히 배를 띄울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출발을 중지하고 풍랑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며칠을 보냈으나, 바람이 멎을 기세는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 가기만 하였다.

수일을 기다리던 중에 안무사는 문득 며칠 전에 꾼 꿈이 생각났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을 모아 놓고 동남동녀 2명에게 명하기를

자신이 잠을 자던 자리에 필묵(筆墨)을 잊고 왔으니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동남동녀가 안무사의 필묵을 찾으러 총총히 밀림 사이로 사라지자

그렇게 심했던 풍랑이 거짓말처럼 멎고 항해에 적당한 바람만 불어오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사람들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할 것을 명하니

배는 순풍을 받고 일시에 포구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 무렵 동남동녀는 아무리 찾아도 필묵이 보이지 않아 배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배는 벌써 수백 리 바다를 거쳐 육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무사를 원망하면서 울부짖던 동남동녀는 공포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한편 육지로 무사히 돌아온 안무사는 그때 두고 온 동남동녀에 대한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던 중에 다시 울릉도 안무사의 명을 받고 섬에 오게 되었다.


섬에 도착한 안무사는 혹시나 하는 기대에 수색을 하였으나,

자신이 유숙했던 자리에는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채로 백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안무사는 억울하게 죽은 동남동녀가 너무 불쌍해 그들의 고혼(孤魂)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 조그마한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 그들의 혼백을 위로하였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기원하고

위험한 해상 작업의 안전도 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건조한 선박의 진수식이 있을 때마다

태하1리 성하신당[성황당]에 제사를 지내

해상 작업의 무사 안전과 어업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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