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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제, 일흔한 살, 첫날을 보냈다.

“허, 저거, 피부가 막! 녹아 줄줄줄 흘러내리네.”

박성규 | 기사입력 2024/03/06 [12:11]

제목: 어제, 일흔한 살, 첫날을 보냈다.

“허, 저거, 피부가 막! 녹아 줄줄줄 흘러내리네.”

박성규 | 입력 : 2024/03/06 [12:11]

<편지글>

     제목: 어제, 일흔한 살, 첫날을 보냈다.

 

                               박 성 규

 

▲ 동네 30분 산책길, 길가에 회양목이다. 시나브로 옷 색깔을 바꿨다. 꽃을 피웠다.     ©

//

존경하는 선생님

잘 지내시죠?

요즈음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

3월입니다. 참 세월이 빠릅니다.

선생님 계신 곳도 그런가요?

/

 

그동안 보내준 카톡, 잘 읽었습니다.

카톡에 바로바로 응신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활기가 넘치는 삶, 응원과 박수를 보냅니다.

//

달이 바뀔 때마다 마음속으로 작심하곤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경애하는 지인 중, 몇 분은 선정하여

이 달이 가기 전에

근사한 곳으로 모시고 가

싱싱한 음식을 대접하면서

신나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그리하여 삶의 지혜를 배울 것이라고.

천우신조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치킨집에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걱정해 주신 것,

고맙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듯이

이제, 많이 숙달되었고 힘듦의 정도가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소일거리로 바꿔진 것 같습니다.

약간의 돈도 생깁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동생을 돕는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있을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 일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

 

며칠 전에 쓴 글입니다.

그러니까, 음력으로 123일이었습니다.

저의 삶의 보고로 가름하려고 합니다.

잡글입니다.

시간이 없으시면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 카페다.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이다. 9년째 단골이다.     ©

 

///

제목: 어제, 일흔한 살, 첫날을 보냈다.

박 성 규

 

여동생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bhc 길상점치킨집,

늘그막에 얻은 일(?), 닭을 튀기는 일, 상당히 버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5개월째다. 많이 익숙해지고 힘듦의 정도가 낮아지고 있다.

오늘, 쉬는 날이다.

/

오전에 동네 ‘30분 산책길을 걸었다.

길가 회양목이 꽃을 피웠다.

그런데 아직 알싸한 향기를 뿜어내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회양목 아가씨! ? 향기가 없소?”

묵묵부답이었다.

심각한 연유가 있을 것 같아 며칠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직, 굶주린 꿀벌을 부를 때가 아닌 듯하다.

아니, 꿀벌이 겨울잠에서 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

인터넷 세상에 떠도는 나의 생일은 123일이다.

한 달 전에 지인들로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사실, 내 생일은 약력이 아니고 음력이다.

한 달 후에 축하해 달라고 말하기도 민망하여 고맙다고 응신했었다.

오늘이 음력으로 123일이다.

//

오늘, 일흔한 살, 첫째 날을 살고 있다.

험난한 시절을, 어려운 상황을, 눈물의 세월을,

, 잘도 이겨냈다고 자찬하고 자위하였다.

자신에게 응원과 격려와 위로를 보냈다.

//

아침 일찍 사위가 케익을 사들고 왔다.

손자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예쁜 봉투를 받았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 들어갔다.

아직, 그 속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물어보지 않으려고 한다. 뻔하다.

아니, ,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그래요?”

타이르는 어조일 것이다.

얼굴은 위압의 표정일 것이다.

//

생일 케익에 초를 꽂았다.

큰 것 7, 작은 것 1

불을 붙이자 촛농이 흘러내렸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아니, 그 속도는 더 빠른 듯했다.

//

요즈음, 거울 속, 얼굴의 늙음을 보면서

한숨을 쉬곤 한다.

한여름, 손에 쥐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듯이 흘러내리는 늙음!

, 저거, 피부가 막! 녹아 줄줄줄 흘러내리네.”

이 흘러내림을 어떻게 주체하리!”

어찌 막을 수가 있으리오!”

, 이거 나만 그런가?

//

프랜차이즈 bhc 길상점, 오늘도 출근했다.

오빠, 오늘 생일, 축하해.”

사징님과 점장님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 애가 내 생일을 다 챙겨주네! 웬일이야? 이런 일이 없었는데…….”

내 도움이 무척 필요한 모양이다.

치킨집 바로 옆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데리고 가더니,

여러 가지 먹거리를 한 보따리 선물로 주었다.

대부분 손주와 손녀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기뻐할 손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했다.

//

5시가 조금 넘자, 조기 퇴근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내일도 쉬라고 했다.

괜찮겠느냐?”

묻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하고 바로 퇴근했다.

4시간이나 일찍 퇴근하는 날이 없었다.

운동장 만한 떡이 코앞에 떨어진 듯 느껴졌다.

//

 

▲ 생일 케익, 하나는 사온 것이고, 하나는 손주들이 만들었다.     ©

 

 

오전에 걸었던 산책길, 다시 걸었다.

어두워져서야 카페에 도착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어름 냉수 한 컵도 요청했다.

휴대용 컴퓨터, 핸드폰, 공무원 연금지, 메모지와 필기 도구, 지압기를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낼까? 아무나 몇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카페에서 두세 시간 보낼 때 주로 무엇을 하시는가요?”

그러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꽂았다.

밴드, 카톡을 둘러보았다.

카톡 열어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멋진 삶을 살아온 그리고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지인이 보내준 글과 영상들,

이를 읽고 답글을 보낸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요즈음 닭을 튀기는 일(?)로 바쁘고 피곤하여

바로 확인하고 응신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다. 이거, 정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

카페에서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 카페는 여주인과 그 아들이 운영한다.

대개 저녁 늦은 시간에는 여사장이 근무할 때가 많다.

가끔 그녀의 남편이 근무한다. 모두 성실하고 친절하다.

10년 가까이 내가 마실 커피를 만들어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친밀감이 커진다.

조금 전에 카페 주인이 아들에서 여주인으로 바뀌었다.

이 여주인은 잘 안다. 내가 두 시간이 지나면 커피를 리필한다는 것을.

올해로 이 카페의 9년째 단골이다.

선생님, 커피 리필 안 하세요? 리필할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요.”

커피를 리필하였다.

//

지금 다른 손님이 하나도 없다.

여주인과 나둘뿐이다.

사장님,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망설였다. ‘본인이 만든 차를 본인에게 배달하여 마시게 하는 꼴을 만드는 것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년 봄에 여주인의 아들이 결혼했었다.

나를 초대했었다. 축하 동영상과 축의금을 전하면서 축하해 주었었다.

그동안 물어보리라 했던 것이 있었다.

며느님이 마음에 드시나요?”

물어보지 않았다.

혹시, 이 물음이 작은 아픔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오늘 하루 잘 살았나? 100점 만점에 몇 점인가?

오늘 하루 평가에는 가산점을 주고 싶다.

쓸데없는 질문을 자제하여 남의 심기를 건드리는 화근을 없앴기 때문이다.

아자, 나이가 일흔한 살이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자. 정신을 차리자!

//

잡글, 읽어주신 거, 고맙습니다.

늘 싱싱한 나날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202436

                                    박성규 드림

<필자 프로필>

김포제일고등학교 교장 정년퇴임,

K-시니어라이프 운영위원 및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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