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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꽃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기사입력 2024/12/26 [08:32]

엄마꽃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12/26 [08:32]

 


엄마꽃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은

엄마 꽃이야!”


천 가지 얼굴로
만 가지 역할을 해내는
엄마꽃

지나온 세월
힘들고 고된 일도 많았지만
그 시간 속에 아름답게 피어난
그런 엄마가

​ 날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사랑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늘 내 힘들 때만 전화해서 미안해

엄마!
엄마가 늙어 갈 때 내 첫걸음을 잡아준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 엄마라는
그 이름을 불러준 딸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고 싶은 기억이

“엄마이니까.......”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우리 딸 좋아하는 오이소박이
고추장, 된장..."

“엄마 왜 이리 많이 가져왔어?

“작년에 해주신 것도
아직 많이 있단 말이야 “

말없이 이것저것
보따리를 풀어내어 놓으시더니

“됐다 이만하면,,,”

"힘들게 이제 하지 마 엄마...."

"그래두 ,,"

내 힘 닿는 데까지 해주고 싶다
말씀하시곤

“나 가볼란다”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라는 말에

“토끼 새끼 밥도 줘야 되고
염소가 새끼를 낳아 젖 잘 나오게
장날에 사골뼈 고와 줘야 한다”며

종종걸음으로 내려가신 엄마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이틀이나 지나서 고향 인근에 입원한 병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분주할 것도 없는 한가로움을 뒤로하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

나의 시선에 늙은 노인 한 분과 시선이 마주쳤다

​ 엄마다!

서울 딸 내 집에 다녀갈 때
그 힘차고 살뜰한 엄마의 모습은 간곳없고

초췌하고 그늘진 두 어깨 위로 깡마른 얼굴과 마주 선 저는

"엄마 나야!
엄마 딸 혜선이"


그저 자식 앞에선
매일 태어나는 얼굴로 바라보며
기둥이고 사랑의 문이었던 엄마가
동그란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합니다

병상에서 찾아온 엄마의 휴식 앞에

한번 울게 되면
두 번 눈물 훔칠까 봐
의연함을 가장한 빈 가슴으로
서울로 올라와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은 알아보는데
온몸에 암이 퍼져 길어야 한 달이라는

오빠의 전화를 끊고 얼음 성에 갇힌 듯
한참이나 멍하니 전화기만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앉았습니다

하늘빛이 말라가도
못난 딸 하나라도 더 해먹이려고
그 많은걸 이고 지고 오셨던

​ 한 땀 한 땀
눈물로 꿰매어진 엄마의 마음이
이제서야 보였던 나는
많이 아플수록
소리 낼 수 없다는 걸 알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아들과 딸을 앞에 두고

“이제 난 너네들 엄마 안 할란다 ”

그 말을 끝으로 간단한 옷가지 몇 벌을 둘둘 말아

가방에 넣은 뒤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곤 무작정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선 고향 집


“엄마!
오늘부터 엄마랑 나랑 여기서 살아”


엄마의 그리움 따라
펼쳐진 친정집 마당

어릴 적 엄마 꽃향기 펄펄 날리며
찬바람에 허리 꺾이며 시린 발끝으로

이 마당을 누비신 내 엄마

청잣빛 하늘이 드리워진 마당 앞
외발로 선 바지랑대에 하늘과 맞닿은
빨래가 꼬들꼬들 말라갈 때

바지랑대 꼭대기에 고추잠자리 홀로 앉아
가을을 노래하던 그곳에

잊혀진 자리에서
기억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고불고불 늙으신
내 어머니 손을 잡고서 말입니다


병원 가기 전까지
일손을 놓지 않았던 손때 묻은
살림들이 이제는

하나둘 딸인 저의 차지가 되어 가겠지만,

고목처럼
휘어진 엄마의 등줄기 따라
훈훈한 동행이 될 수 있다면

행복하다 말 한마디
가슴에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엄마 이것 봐"

어릴 적 비 오는 날
감자전 부쳐 주던 감자를 캐며
봄볕 같은 따사로움을 마주한 전

"엄마 어디 제일 가고 싶어?"

​ 옹이로 깊이 박힌 추억의 빗장을 풀어
엄마의 기억이 처음 시작된 그곳으로
차에 이 불 몇 개 약봉지 달랑 챙겨선

먼 길을 나섭니다

엄마가 처음 태어난 곳

​ “ 친정”

"여기가 엄마가 태어난 곳이야?

엄마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과 교실을 거쳐

마을회관에 가니
아직도 고향에 머무르고 있는
친구들과 해묵은 해후를 하며
더듬어가는 추억 길 따라
엄마의 햇살 같은 웃음도
되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렇게 환한 웃음을

진작에 찾아 드리지 못한 미안함도 함께 말입니다


오늘은
엄마가 시집와 나를 낳았던
동네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물 길어 머리에 이고 딸을 업은 포대기 너머로 물이 갈까

조심스레 들어서는 집 앞에 누런 코 빠뜨리며

엄마 찾아 울고 나와 있는 아들

단출한 한 칸짜리 집에서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느끼게 해 준
엄마가 새삼 고맙기만 합니다

왜 진작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그저 내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 좋을 때만..
내 아쉬울 때만….

찾았던 엄마


“엄마 미안해요! 그땐 몰랐어요”

딸의 마음속 독백은
메아리 되어 흘러갑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추어탕을 드시고 난 후
토하고 통증을 느끼는 엄마

바쁘고 시간이 맞지 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함께 어딜 다녀본 적이 없는

서툰 걸음이지만

통증이 오면 절망을 매달고
통증이 안 올 땐 희망을 매달다

그마저도 힘들 땐
눈물 한 방울로 간을 맞추어가며
단풍 고운 내년에도
같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엄마와의 추억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궁이 불 피워대는
부뚜막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이별 없는 사랑으로
채색되길 바라는 딸의 마음을 아는
엄마는

“고마워 딸 !
기억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해줘서....”


엄마를
보내야 하는 건 아는데..
떠나야 하는 건 아는데...

“ 엄마 만지고 싶어지고 보고 싶을 땐
어떡해? ”

​아궁이 속 까만 숯덩이보다 더 검게 탄
엄마와 딸의 눈물꽃은 까만 밤이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달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낮잠이 드셨다.

정신 맑은 시절에는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두 다리.

오늘 그 예쁜 발을
다시 한번 만져보고 싶어
두 손으로 감싸며
잠든 엄마를 내려다 봅니다

"꽃보다 예쁜 내 엄마가
먼저 시들어간다"

"세월의 길 따라
언제 이리 허리가 굽어지셨는지..."

자식들 다녀갈 때 버스정류장 앞에서
몸빼에서 꼬깃꼬깃 천 원짜리 몇 장 꺼내

쥐여주시던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엄마의 손....

겨울에 학교 갔다 오면
양손 번갈아 가며 녹여주는 그 손을....

갈대에게 허리 굽은 이유를 묻지 않듯
한 번도 그 손을 만져주지도
허리가 왜 그리 굽었는지
묻지도 않은 못된 딸....

"엄마! 정말 미안해.."

그런 엄마가 날 사랑하는 만큼
엄마를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 엄마!

늘 내 힘들 때만 전화해서 미안해

엄마!

엄마가 늙어 갈 때
내 첫걸음을 잡아준 그 손을
잡아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엄마!

지나온 세월
힘들고 고된 일도 있었지만
그 시간 속에 아름답게 피어난
엄마꽃


그 이름을 불러준 딸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고 싶은 기억이

엄마이니까....


엄마의 몸은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고 있나 보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엄마를 보며


엄마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내 엄마로 있어줘서...
나의 엄마여서 고마워...

​쓸쓸한 마당
끄트머리 빈 곳에 핀 엄마 꽃은
세월에 빛바래고 낡아져
다 떨어진다 해도

천 년이 흘러도
영원한 그리움인 것 같습니다


손으로 그린 사랑은
지울 수 있어도
마음으로 그린 사랑은
지워지지 않기에......

 

 


펴냄 /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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