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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냄비에 담긴 행복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기사입력 2024/12/05 [08:26]

빨간 냄비에 담긴 행복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12/05 [08:26]

 


빨간 냄비에 담긴 행복


자고 일어나니 겨울 함박눈이
온 세상에 하얀 분칠을 해놓았습니다

탈색된 세상에 하얗게 변한
길바닥 위를 걸으며
사람들은 해맑은 미소로
새벽을 시작하고 있었죠

채 가시지 않은
어스름한 어둠이 내려앉은 길가에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리어카가
주인을 기다리는 듯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자가용 한대가
노란 비상등을 켜놓은 채
운전자로 보이는 남자가
할머니의 리어카주변을 왔다 갔다
배회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손등에 먼지가 이는 삶이
전부라고 써 붙여진
할머니가 박스 한 움큼을
머리에 이고는

걸어도 줄지 않는 걸음으로
리어카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이를 잊은
잠들지 못한 고달픔을
허리에 매단 채
걸어오는 할머니에게

할머니께서 이 리어카 주인이세요?"

'제 리어카구먼유
차가 지나가는데 방해가 되었남유
얼렁 뺄게유"

'그게 아니구요
제가 운전 실수로
할머니 리어카와 부딪쳐
리어카 바퀴 뒷부분이
찌그러져 버렸어요 "

빈 가슴 내보이기 싫었던 할머니는
괜찮아유
그쪽 고급 차가 상한 게 문제쥬
이까짓 리어카가 뭔 대수래유 "

한사코 마다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에겐 이 리어카가 전부잖아요

수리를 하라고 준비한 듯
돈이 든 봉투를 건넨 뒤
차 유리창에 달라붙은
까만 어둠을 떼어 내려는지

하얀 불빛들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도로에는 아직도
하얀 눈을 뜨고
내달리는 자동차들이
바쁘게 뛰어가고 있었고

할머닌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채
한참을 폐지 정리로
먹빛 어둠 속에 머물더니

휘어진 등줄기 따라
한 끼 배고픔을 해결 하려는지
걸어도 달려도
늘 제자리 같은
리어카와 함께
밀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할머니 편이라곤
미처 보내지 못한
하나뿐인 둥근달을
머리에 이고서

리어카가 멈춰 선 곳은
허기지고
마음 저린 이들에게
고향 같은 행복을 주는 곳
빨간 자선냄비 앞이었습니다

먼지 소복이 쌓인
지난날 들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건네받은 하얀 봉투를 꺼내어
자선냄비 속에 넣은 뒤
걸어가는 발자욱 마다

배려는 손님이 아닌
내가 가진 마음이기에

내마음을

"배려"라는

체에 걸러면
줄수록 커지는 행복"이
나에게 오는 거라며

새하얀
눈송이들이
만들어준
길위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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