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더하기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K-시니어라이프 | 입력 : 2024/09/05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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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다문 하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침 달님조차 숨어버린 까만 밤에 들어온 게 미안해서인지 아빠는 학교 가는 딸에게 용돈을 건넵니다
딸은 돈을 들고 한참을 서 있더니 아빠에게 다가갑니다 "아빠 이 돈 가지고 뭘 하나 사고 싶어요 드릴테니 아빠가 사주세요
"뭘.. 사다 줄까 예쁜 우리 공주님.."
"아빠 시간을요 아빠랑 오늘과 같이 저녁 먹고 싶어요.,
아빠는 애먼 엄마 얼굴만 쳐다보며 입 모양만으로 미안함을 말하려 합니다
아내는 "평소에 잘하셔야죠"라는 표정으로 생긋이 웃고만 있구요
어둠이 먼저와 누워버린 거리에 비까지 오는데 딸아이가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질 않습니다
*딕*딕* 딕*딕*
전자음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리더니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들어서는 딸
아이 앞에서 역정부터 내놓고는 서둘러 화장실로 보내고 난 뒤 현관 바닥을 닦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립니다
"네 지수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
"어제 지수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 학교에 보냈는데 마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려다 급한 볼일 때문에 늦어졌는데 은미가 우산을 집까지 씌워져서 올 수 있었다며 아들이 들어오더라고요 "
천사표 따님 때문에 무사히 올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고난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딸아이를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엄마가 미안해" 라면서요 까만 밤이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노란 달과 함께 친정엄마가 오셨습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시골에서 올라오시면서도 늘 사탕을 주머니마다 가지고 다니시는지라 손녀에게 사탕 할머니라는 별칭도 얻은 것도 모자라 꼭 식사를 하시면 물 대신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습관 때문에 엄마가 오시는 날엔 미리 준비해야 한답니다
콩닥거리는 하루를 건너고 건너 사흘째 되던 날 아빠랑 학원에 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 슈퍼에 좀 세워주세요 "
"안 돼요
또 군것질하고 싶어서 그러죠 울 공주님 "아녀요 할머니 요구르트가 다 떨어졌단 말예요^
아빠랑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립니다 "여보 엄마 요구르트가 떨어졌어요 있는 알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말이 끝나자 아빠는 애꽃은 머리만 매만지고 있습니다
"거봐요. 제 말이 맞죠.. 헤헤
요구르트 열병이 비닐에 싸인 채로 맥없이 건네는 아빠를 보며 딸아이가 나섭니다
'잠깐만요 할머니"
부억 싱크대 서랍을 열어 하얀 빨대를 가져오더니 요구르트병에 예쁘게 꽃고는
'이제 할머니 드세요.. 하며 내밀어 줍니다
아빠는 또다시 머리만 끓적거리며 아내 얼굴에 쓰인 핀잔을 애써 외면하고는 방으로 냉큼 들어가 버립니다
겨울이 봄을 늦게 보낸 탓에 꽃망울 진 예쁜손녀의 재롱을 더 못 보시고 엄마는 그만 하늘나라로 가시고 말았답니다
할머니 영정 앞에 아빠의 손을 잡고 딸아이가 들어옵니다
곱게 인사를 한 뒤 가져온 가방에서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내어놓더니 나란히 놓아둡니다
평소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사탕과 하얀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 한 병을 놓아두며 딸아이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혹시나 할머니가 찾으실 때 드리려고 제가 숨겨 놓은 거라고....."
노자규의 골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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